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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심탈레브의 행운에 속지마라 서평09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마라를 읽고 - 서평09


최적화의 삶 vs 충족하는 삶



[집필 후기- 샤워하면서 떠오른 세 가지 생각] 중 [불확실성과 행복] 부분이 인상 깊었다. 나심 탈레브는 열차 시간에 쫓기는 사람과의 식사, 열차 시간이 무작위거나 시간을 모르는 사람과의 식사를 비교한다. 그것은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인생에서 최적화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충족을 추구하는게 더 행복하다는 주장을 한다. 나는 거기에 조금 보완을 한다. 우리가 성장하는 삶을 산다고 전제하겠다. 최적화와 충족 추구 사이에서 성장에 맞춰 무게추를 조금씩 옮겨가는 게 안전하다. 최종적으로는 '충족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되기 전 단계나 겨우 해내고 있는 단계라면 최적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
'자아 실현, 여유, 가족과의 많은 시간'과 같이 궁극적이고 거시적인 가치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구축 되기 전에 그것들만 추구하다보면 당장의 파도에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 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고시텔에 들어가 살면 되겠다는 목표를 먼저 세웠다. 고시텔 비용과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모을 때까지는 그것에만 몰두했다. 들어간지 얼마 안된 직장에서 첫 월급 백만원 남짓한 돈을 받고 비로소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번 돈으로 얻은 고시텔에서 자고, 핸드폰비를 내고, 음식과 맥주를 사먹었다. 그런 독립 생활을 적응해가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수백만원의 예금이라는 안전 장치가 생겼다. 그리고 최적화의 삶에서 충족하는 삶으로 무게추를 조금씩 옮길 수 있었다.

술을 멀리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자기 전 [일리아드]와 [사기]와 같은 고전을 읽으며 영웅들에게서 용기와 지혜를 배웠다. 사랑을 하고 싶었고 몇 달후 여자 친구도 만들었다.
내가 20대 때 겪은 위와 같은 과정이 '최적화'에서 '충족의 삶'으로 무게 추를 옮겨가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나심 탈레브의 말처럼 지나친 최적화 대신 충족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게 좋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단계에 오래 전에 도달 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적화가 우선 순위가 되야하는 단계를 생략하고 얘기 했다. 내가 조금 덧붙여 다시 정리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임계점까지는 '최적화'를, 임계점 이후는 '충족'을 지향하는게 좋다.

 

 

 



그 임계점이 모호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안전을 느끼는 환경과 상황이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시점' 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아프지 않다는 전제하에 당장의 의식주가 해결 되는 단계가 그 시점이다. 그 기준점은 각자 최대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정하는게 갈팡질팡하지 않는 삶을 위해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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